친절한 Buxton 씨

2010.11.11 18:32 from 분류없음


<사용자 경험 스케치>가 한창 편집 중이었던 지난해 9월쯤이었을 겝니다. 뜬금없이 캐나다에서 나를 찾는 전화가 왔습죠. 친군가 했더니 묘령의 여성 목소리더군요. 영어에 발달된 혀가 튕겨내는 어눌한 한국어로,,,

여보세요, 두루 씬가요?; 예, 맞습니다만,,,,실례지만 무슨 일로...; 아, 빌 벅스턴 씨 아시나요?; 음, 개인적으로야 뭐..,,,저희 책 저잔데요...; 그분이 당신하고 할 말이 있다네요.. 이메일주소 좀 알려주세요...; 아,, 예...불라불라불라..   

이렇게 시작된 빌과의 만남은 친절하기 그지없는 메일이 몇 차례 오고간 끝에 급기야 이런 메일을 받게 되었습죠.


인사이트가 번역서가 대부분이긴 하지만 저자로부터 직접 이런 식의 친절한 제안을 받은 건 무척 이례적인 일이었죠. 당근 뭘 어케 해야 할지 우왕좌왕, 좌충우돌....그래서 급히 황리건 님께 SOS를 요청했습니다.

리건 님, 이런 식의 제안이 왔는데,,, 혹 컨퍼런스나 이벤트 계획 없으세요?; 아, 그래요, 마침 KAIST에 노먼이 와 있는데,,, 같이 뭔가를 꾸밀 수 있겠는데요....제가 함 해보죠...

그래서 우리의 수퍼파워(?) 리건 님, 발바닥에 땀나도록 뛰어다녀 이번 UX symposium 행사 를 치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KAIST 교수님들의 절대적인 지원이 있었지요. 도널드 노먼, 빌 벅스턴 외 LGE의 이건표 센터장님, 다음의 조제희 팀장님, 넥슨의 강규영 님 등이 참여한 이번 행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볼 거리, 들을 거리를 제공했다고 하네요. 덕분에 저희도 판매부스와 저자 사인회를 마련하여 책 홍보에 쏠쏠한 재미를 보았구요.

빌과의 첫 만남은 약간 싱거운 바람 같았습니다. <Sketching user experience>에서 보여줬던 강렬함 때문에 마치 그의 글이 '의식의 서사' 같았던, 그래서 뭔가 범접키 힘든 아우라를 기대했던 저로서는 '무의식의 논리'에 빠진 것처럼 흐트러진 아귀를 맞추느라 잠시 멈칫해야 했습니다.....왜냐구요... 동네 어귀에서 흔히 마주치는 수퍼가게 아저씨 같았기 때문이죠.

시원하게 벗겨진 두부하며,
정돈하지 않은 머리칼하며,
무심하게 싱글거리는 눈빛하며,
족히 10년은 넘게 입었을 쎄무 자켓하며,
언제 다리미질 한지 모를 꼬질꼬질한 셔츠, 
무릎 터져나온 바지,
출처를 알 수 없는 누런 캐줠 구두...
더불어, 위 분위기와는 아주 쌩뚱맞게 안 어울리는 컬퍼풀한 돋보기 안경테...

간단한 인사와 함께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이라고 하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웃더군요..(영어회화가 잘못되어 그랬나?) 뭐, 이런 첫 인상은 점심 식사 후 시작된 강연 세션에서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에너지와 유머러스한 액션을 확인한 후 여지 없이 깨지긴 했지만 아뭏든 재밌는 경험이었습니다.

저자 사인회에 앞서 잠시 부스에 들른 빌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책이 원서보다 정말 잘 나왔다고 GREAT!를 연발하더군요. 이런 모습에 담당 편집자로서 우쭐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물론 바로 박살나고 말았습죠. 바로 옆에 서 계셨던 사장님 얼굴 보니 판매지수가 바로 떠올랐거든요.ㅠ






처음 만남의 순간부터 인사이트 스탭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헤어질 때까지 줄곧 잃지 않았던 편안한 미소와 협업으로 단련된 듯한 아니 되었을지 모를, 어쩌면 부담스레 느낄 만한, 친절함은 그가 가진 지식이나 능력만큼이나 하나의 인격으로 다가 왔습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고 나서 느끼는 가벼운 설레임이 아직도 잔잔한 여운으로 남는군요.

Bill~~ Be 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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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이란 참...

2010.09.08 19:08 from

I'm a geek, and I might be a nerd, but I'm not a dork.

Michael Lopp의 새책 Being Geek의 서문에 첫 문장이다. geek말고는 생소한 단어다. 그래서 dictionary.com을 열어보니, 다른 의미는 제쳐두고,


geek
a computer expert or enthusiast (a term of pride as self-reference, but often considered offensive when used by outsiders.)
 a carnival performer who performs sensationally morbid or disgusting acts, as biting off the head of a live chicken.

nerd
a stupid, irritating, ineffectual, or unattractive person.
an intelligent but single-minded person obsessed with a nonsocial hobby or pursuit: a computer nerd.

dork
a stupid or ridiculous person
 a stupid or incompetent person


해석해보면 이렇다. (물론 나의 해석이다.)

"나는 긱이다. 속칭 열정적으로 컴퓨터를 파대는 전문가다. 뭐, 너드라고 할 수도 있다. 지능은 뛰어나다지만 사회적이진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터무니없는 이상한 놈이거나 볼썽사나운 꼴통, 즉 도크는 아니다."

근데, 저 짧은 한 줄을 이렇게 번역해도 되나? 모르긴 몰라도 소위 번역의 원칙에 어긋날 것이다. 그럼 짧게 직역을 해볼까?

"나는 긱이다. 너드라 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도크는 아니다."

영 아니올시아다. 그나마 geek은 그렇다손치더라도 nerd나 dork라는 단어의 mental model이 우리에겐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번역할 수도 없다. 그럴듯해 보이지만 원 문장의 뉘앙스가 완죤 해체된 느낌이다.

"나는 컴퓨터 전문가다. 지능적이지만 사회적이진 못하다. 그렇다고 꼴통은 아니다." 


번역문 교정을 보다보면 이런 식의 문제를 많이 보게 된다. 원어민에 가깝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도 한글로 번역하라면 제 각각이다. 물론 그 문맥을 잘 파악하여 잘 읽히게 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여기서 문제라고 한 이유는 해결책을 꼭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정은 꽤 고통스럽다. 저자/역자와 독자 사이에 낀 편집자의 위치 때문일 수도 있다. 많은 메일이 오가고 통화를 주고 받지만 결국 해결은 타협의 산물로 남는다.  

편집자가 위와 같이 제시하면, 바로 타박이 날라온다. 번역의 '번'자도 모르는 것이,, 어디 나서기는... (물론 대놓고 이런 말하는 역자는 없다.) 사실 편집자는 역자만큼의 전문성이 없다. 한마디로 잘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그 질곡은 더해간다. 아직도 ?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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